지난달 30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6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에 따르면 한화그룹의 공정자산총액은 149조605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125조741억원) 대비 약 19% 증가한 수치로, 순위 역시 7위에서 단숨에 5위로 두 계단 뛰어올랐다.
이는 롯데그룹과 포스코그룹을 동시에 제친 결과다. 롯데는 자산 142조4200억원으로 6위로 밀려났고, 포스코 역시 140조5840억원에 그치며 7위로 내려앉았다.
한화의 상승세는 단순한 ‘순위 변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2016년 11위였던 한화는 10년 만에 5위까지 치고 올라오며 자산 규모를 약 3배로 불렸다. 현재 4위인 LG그룹과의 격차도 37조원 수준으로 좁히며 ‘빅4’ 진입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이번 판도 변화의 핵심에는 방산과 조선이 있다. 글로벌 지정학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무기체계 수요가 폭증했고, 에너지 운송 시장 회복으로 조선업 역시 초호황 국면에 진입했다. 한화는 이 흐름을 정확히 읽고 선제적 투자와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기회를 선점했다.
전환점은 2015년이었다. 한화는 당시 삼성그룹의 방산 계열사를 인수하며 탄약 중심 기업에서 종합 방산기업으로 체질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후 2022년 방산 역량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집중시키고, 2023년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한화오션으로 재편하면서 조선·해양 방산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최근에는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와 호주 방산업체 오스탈 지분 확보까지 더해지며 글로벌 방산·조선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 같은 전략은 곧바로 실적으로 이어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5년 기준 방산 부문 매출 10조원, 영업이익 2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반면 롯데와 포스코는 정반대의 흐름을 보였다. 롯데는 유통 산업의 온라인 전환과 석유화학 업황 부진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했고, 포스코는 철강 시장에서 중국과의 저가 경쟁, 보호무역 강화, 탈탄소 부담이라는 삼중 압박을 받고 있다.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2차전지 소재 사업 역시 전기차 수요 둔화로 기대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 최근 2년간 자산 증가율에서도 격차는 뚜렷하다. 한화가 약 80% 증가한 반면 롯데는 10%, 포스코는 6% 수준에 그쳤다.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성장과 정체의 명확한 분기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재계 순위 변화는 단순한 기업 간 경쟁을 넘어 산업 지형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방산·조선·에너지 중심 산업이 급부상하는 반면 유통·철강·화학 등 전통 산업은 구조적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신호다.
재계 관계자는 “한화의 급부상은 방산 중심 사업 재편과 과감한 M&A 전략이 지정학적 위기라는 외부 변수와 맞아떨어진 결과”라며 “다만 국제 정세에 크게 영향을 받는 사업 구조인 만큼 향후에는 포트폴리오 안정성이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