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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비평] 사표(死票)를 던진 베테랑 협상가, 선거 공학의 맹점을 찌르다

심재현기자 | 기사입력 2026/05/31 [12:55]

[기획·비평] 사표(死票)를 던진 베테랑 협상가, 선거 공학의 맹점을 찌르다

심재현기자 | 입력 : 2026/05/31 [12:55]

정치는 철저한 계산의 산물이며, 선거는 그 계산이 가장 잔인하게 시각화되는 무대다.

 

특히 투표일을 불과 사흘 앞둔 시점의 정당 간 단일화는 명분이라는 포장지를 찢고 들어가면 결국 ‘지분 나누기’와 ‘책임 전가’라는 날 선 칼춤만 남게 마련이다. 이번 울산광역시장 후보 민주·진보 단일화 과정 역시 겉으로는 거친 공방과 지지층 간의 감정적 대치로 점철되며 여느 선거판과 다름없는 냉혹한 흘러감을 보였다.

 

 사진 김상욱-김종훈,원팀 선언/울산시의회 제공


그러나 김상욱 후보 측 실무협상대표로 전장을 지휘했던 최광웅 대표의 사후 소회문은 맹목적인 진영 논리에 갇혀 있던 선거판에 기습적인 균열을 냈다.

 

그는 승패와 이념의 톱니바퀴로만 돌아가던 선거 공학적 접근 방식을 거부하고, 그 자리에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최 대표는 울산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40년 차 서울 토박이다. 이 ‘합리적 이방인’의 시선에 포착된 3주간의 울산 협상 테이블은 치열한 암투의 장이기 이전에, 자신들이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영혼을 갈아 넣는 인간들의 진심이 부딪히는 공간이었다. 그는 상대 진영의 김종훈 후보와 방석수 위원장이 완강하게 버티던 대치 국면 속에서 억지가 아닌 ‘울산을 바꾸고 싶어 하는 거대한 열정’을 정밀하게 읽어냈다. 당이 다르고 노선이 다를지라도 이름 없이 헌신하는 진보당 활동가들의 태도에서 정치적 셈법을 초월한 인간적 경외감을 발견한 것이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그의 존중이 단순한 수사에 그치지 않고, 지난 30일 사전투표소에서 실행된 행동으로 증명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평생 처음으로 진보당에 광역의회 비례대표 한 표를 행사했다. 정치적 사표(死票) 가능성이 누구보다 높다는 것을 잘 아는 베테랑 협상가가 내린, 선거 공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역설적인 선택이었다. 당선 가능성이라는 숫자의 계산을 지우고, 밤낮을 고뇌하며 한국 정치의 미래를 논했던 파트너에 대한 ‘인간적 예의’에 기표한 셈이다.

이 결단은 진보당의 이념적 지향점에 전적으로 동의했거나 민주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철저하게 자기 진영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협상대표가, 적대적 공존 관계에 있는 상대의 진심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정치적 품격’의 발현에 가깝다.

 

상대의 존재를 지워야만 내가 사는 한국 정치의 기형적인 구조 속에서, 최 대표는 투표권을 권력 쟁취의 무기가 아닌 연대와 존중의 편지로 전환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선거가 끝나면 승자와 패자의 성적표는 냉정하게 갈릴 것이다.

 

그러나 “선거는 끝나도 사람은 남는다”라는 그의 일침은 비정하기 짝이 없는 기성 정치권을 향해 던지는 날카로운 경종이다. 정치가 결국 사람의 문제를 다루는 영역이라면, 승패의 결과물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증명해 보이는 인간적 신뢰와 가치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난 뒤 전주 풍남문 골목에서 방석수 위원장과 막걸리 잔을 부딪치며 웃겠다는 그의 소박한 소망은, 혐오와 배제로 얼룩진 현 정국이 가야 할 진짜 ‘사람 냄새 나는 정치’의 이정표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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